사진 출처_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평범한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은 스물 아홉의 청년(얼굴은 훨씬 더 앳되다)이 지난 17일 밤 전용기를 타고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에다 세계 최대 SNS ‘페이스북’(facebook) 공동 창업자 겸 CEO인 마크 주커버그의 첫 내한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의장 빌 게이츠와 구글 CEO 래리 페이지에 이어 올해만 세 번째로 세계적인 IT 거물이 서울에 온 것이다. 18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서 새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인 ‘창조경제’와 페이스북 경영 노하우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눈 후, 오후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만나고 18일 밤 출국했다. 대중 강연 한번 하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나저나 IT 업계 대부들의 의견을 수렴한 ‘창조경제’의 윤곽이 어떤 모습일 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아무튼 혁신을, 세계적인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롤모델이 된 마크 주커버그는 어떻게 어린 나이에 빌 게이츠급 인사가 된 것일까? 게다가 그는 ‘유산 상속이 아닌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중 최연소’라는 ‘쿨’한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타임>지가 2010년,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샌지 대신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었던 마크 주커버그. 그 성공의 중심에는 현재 전세계 11억만 명의 가입자 수를 자랑하는 페이스북이 있다. 혁명처럼 SNS 바람을 불러일으킨 페이스북의 설립 과정은, 데이빗 핀처가 연출하고 제시 아이젠버그가 주커버그로 열연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2010)에 드라마틱하게 소개됐다(물론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영화 속 마크 주커버그는 전형적인 너드(nerd)다. 칭송할 만한 컴퓨터 천재지만, 그러므로 부자가 될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현실에선 여자 손 한번 속 시원하게 잡지 못하는 얼간이, 괴짜. 하지만 실제 주커버그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데, 구와바라 데루야가 쓴 『마크 주커버그의 초고속 업무술』에 따르면, 실제 그는 고교 시절에 펜싱부 주장을 맡는 등 밝고 사교적인 편이라고. 적어도 골방에 틀어박혀 인터넷을 애인 삼는 유의‘찌질이’는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주커버그의 고향은 미국 뉴욕주 화이트플레인스다. 1984년, 치과 의사 아버지와 정신과 의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커버그는 세 명의 여자 형제들과 자랐다. 그는 중학교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해 곧 두각을 나타냈다. 11살에 아버지가 운영하는 치과 사무용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고교 시절엔 인공지능 음악 재생 프로그램 ‘시냅스 플레이어’를 만들어 마이크로소프트와AOL에서 시냅스 인수와 고용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2002년, 하버드대 컴퓨터과학과를 택했다. 하나 그는 컴퓨터만 아는 괴짜가 아니라 인문학적 관심도 많아 지식의 균형감각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고전문학은 물론 히브리어와 라틴어도 좋아하며, 하버드대에선 복수 전공으로 심리학도 공부했으니. 하지만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하진 않았다. 20대 IT 갑부의 서막이 하버드 시절에 활짝 열려 버렸으니까. 2003년 주커버그는 대학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함께 장난 삼아, 하버드대생끼리 인맥 관리를 할 수 있는 친목 사이트 페이스매시(facemash – 페이스북의 전신)를 만든다. 그런데 그 서비스가 예상외로 인기를 끌어 하버드를 넘어 스탠퍼드 등 다른 대학 학생들한테까지 퍼진다. 자생적으로 뻗어나간 페이스매시의 인기에 힘입어 2004년부턴 ‘더페이스북’(The facebook_ 페이스북은 얼굴 사진이 실린 학교 동창회 명부를 뜻한다)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점차 이용자 영역이 확대돼 2006년부터는 13살 이상, 이메일 주소를 가진 이용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거대한 서비스가 됐다. 하버드 시절은 주커버그에게 페이스북이라는 은총과 지금의 아내 프리실라 챈을 만나는 행운을 안겼지만, 동전의 앞뒷면처럼 어두운 그림자 또한 드리웠다.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주인 타일러와 카메론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와 아이디어 도용 문제로 무려 7년간 법정 공방을 벌였기 때문이다(2011년 쌍둥이 형제가 항소를 포기해 법정 싸움은 마무리됐다). 윙클보스 형제의 소송 이유는 주커버그가 대학 시절 만든 페이스매시가 자신들이 기획한 웹사이트 커넥트유(ConnectU)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는 거였다. 일부 도용 혐의를 인정한 마크 주커버그가 현금 2천만 달러와 4천 5백만 달러의 페이스북 주식을 양도했는데, 쌍둥이 형제는 페이스북 주식가치 재평가를 주장하며 계속 더 많은 돈을 달라고 소송을 걸었다. 그러니 지루한 진흙탕 싸움을 계속 해 온 거였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
뿐만 아니라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페이스북의 공동 설립자인 왈도 세브린과의 싸움도 굉장했다. 두 사람은 경영권 문제로 갈등을 벌이다 법정 분쟁을 벌였고, 결국 세브린이 주커버그에게 져서 페이스북 주식 지분이 4%로 크게 줄었다(그래 봤자 세브린 역시 2조 이상 지닌 자산가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주커버그의 배신’이라 불렀다. 어마어마한 돈더미 앞에선 손톱만큼의 우정도 지속되지 않았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카피처럼 페이스북을 통해 몇 억 명의 온라인 친구가 생긴 순간, 그의 진짜 친구들은 적이 됐다. 실제로 직원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하러 극장을 찾았던 마크 주커버그는 자신을 성공에 눈이 먼 파렴치한처럼 그렸다면서 짜증을 냈다고. 페이스북은 지난 2008년, 기존 1위였던 '마이스페이스'를 제친 후 줄곧 전세계 SNS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성장은 최근 주춤한 상태로, 지난해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시장가치 하락에 대해 “실망적”이라고도 했다. 최근 나스닥 상장 1주년을 맞은 페이스북은 상장 이후 주가가 30% 떨어졌다. 주가 급락으로 주커버그의 자산 역시 반토막 나, 현재 10조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과연 ‘포스트 잡스’니 ‘포스트 게이츠’니 하는 수식어를 잠재우고, 금세기 최고의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까? 주커버그가 그리는 페이스북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5년 후에도 페이스북 비즈니스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을까? ![](http://image.kyobobook.co.kr/images/book/medium/320/m9788984455320.jpg) | [정치/사회] SNS 쇼크 카르스텐 괴릭 | 시그마북스 2012.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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