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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경제인구와 환경인구, 그리고 맬더스
이민부(대한지리학회장, 교원대 교수)
우리말 인구(人口)는 ‘사람의 입’이고 식량의 소비자로서의 뜻이 강하다. 인구가 늘었다는 입이 늘었다는 뜻이고 그만큼 식량이 더 필요하고, 식량(食) 외에 의(衣)와 주(住)도 더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어려운 시기에 인구는 ‘힘’이 아니라 ‘짐’으로 보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식구(食口)는 한집에 같이 사는 인구이다. 가구(家口), 호구(戶口) 모두 양식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입이 들어 있다.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았다. 통치자의 입장에서도 백성을 먹이는 일이 사실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영어의 인구는 population이고 이것은 popular(민중의, 대중의, 인민의, 널리 알려진, 인기있는)의 뜻이며 그냥 전체 사람 수라는 의미가 많다. population은 생물의 개체수를 나타낼 때도 사용한다. 또한 demography도 인구 혹은 인구학(人口學)인데 여기서도 demo의 뜻은 민중, 인민, 백성의 뜻이다. 수를 헤아리는 통계적인 특성도 보인다. 통치자의 입장에서 먹여 살려야하는 수(population)가 얼마인가하는 점에서는 결국은 우리의 인구와 맥이 통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금융경제위기를 넘어 실물경제위기로 옮겨가면서 경제규모 자체가 줄어드는 디플레이션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수요는 적은데 가격이 내려야 정상인데 그렇지 못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된다고 우려한다. 앞으로 어떠한 전망이 나올지 걱정스럽다. 인구는 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인구가 경제 주체로서 경제의 원동력이거나 생산물에 대한 소모자로서 경제에 대한 부담이거나 간에 모두 경제와 연관을 가진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은 아니지만 거의 선진국 문턱에 와 있는, 세계적으로 그 경제력을 인정받고 있는 고도의 신흥국이다. 현재의 우리 경제에서 경제인구(다양한 수준을 가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자원이 없으므로 사람(인재, 인적 자원)이 자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세계적으로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인구증가율이 둔화되고 급기야는 나라 전체 인구가 줄 것으로 우려하는 나라들이 많이 나타났다.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라고 한다. 한국의 출산율은 1.2명으로 가장 낮다. 낮다고 걱정하는 유럽도 1.3명이다. 만일 이대로 간다면 우리나라 현재의 4천 800만 명이 50년 후에는 3천만 명으로 100년 후에는 500만 명으로 내려간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혹시 전세계적으로 환경인구의 압박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출산율이 낮아지면 인구의 노령화가 진행되고 부양 인구는 늘어난다. 그러나 경제를 받쳐줄 노동력이 줄고, 부양능력도 줄어든다. 왜 출산율이 줄어드는가? 맞벌이나 보다 나은 생활수준을 요구하다보니 여러 애를 키우기가 힘들다는 것이고, 혹은 애를 낳을 처지가 안 된다는 것, 더한 것은 결혼할 겨를이 없거나 여유가 없다는 점 등 많다. 여기서 말하는 인구는 경제인구(economic popul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부족한 노동력은 해외에서 불러들이고 아기를 많이 낳도록 국가 정책으로 장려하고 있다. 요즘 보면 초중등 학생들의 수가 90년대 들어서 계속 줄고 있다.
한편 인구 폭발, 인구 재앙에 대한 공포도 있음이 사실이다.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일수록 더하다. 맬더스의 인구론이 이러한 점에서 유효한지 모른다다.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에 따라 “식량 증가는 산술급수적이지만(1,2,3,...) 인구증가는 기하급수적(1,2,4,8,16....)”이라는 것이다. 결국 식량이 모자라서 기아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중간에 범죄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법질서나 결혼제도 등과 같이 어떤 식으로 조절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책 없이 인구가 늘어나면 빈곤해지고 국가의 빈곤대책이 필요함을 논하고 있다. 여기서 식량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대표적인 것을 말하지만 의식주 전체로 확대하면 에너지, 자원문제로 확대된다. 결국 환경 인구(environmental population)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억제 대책이 국가의 방침이었다.
당장 살아감에 경제 인구도 중요하지만 멀게 보면 환경 인구도 만만하지 않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에너지와 자원문제의 장기적인 심각성은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바이다. 맬더스는 사회적으로 자연적으로 조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어떤 형태의 재앙으로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맬더스의 연구 결과 혹은 예언과는 달리 인구는 계속 늘어났고 식량 증산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농업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농경지 확대, 비료와 농약 사용의 증가, 수리시설과 저수지 확보로 안정적인 농수 공급, 지하수 채굴과 특수재배를 위한 석유 공급, 농기구와 농기계의 발달과 운용, 종자 개량과 농업기술 개발 투자 등을 들 수가 있다. 초기의 농업은 자연의 조건(토양, 기후, 물)과 인간의 노력(노동력)이 결합된 반(半) 자연 상태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갈수록 수많은 자원(지하자원, 수자원 등)과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가능한 상태로 발전하였다. 결국은 수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식량은 단순한 주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종류의 기호품(술, 커피, 차, 담배 등)까지 감당하고 나아가서 바이오 에너지까지 생산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삼림과 하천 범람원을 농경지로 바꾸고 자원개발과 환경문제를 야기하면서 식량 증산을 한 것으로 설명된다. 210년 전에 맬더스는 지나친 자원채굴과 환경파괴를 통하여 식량을 증산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현재의 농업이 어느 정도 지속가능한 산업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맬더스 인구론의 요지는 ‘비교적 자연 상태를 유지하면서’ 농업(부분적으로 다른 일차 산업으로 대체 가능, 유럽은 식민지를 착취하여 인구을 어느 정도 부양했을 것임)에 좋은 조건에 많은 인구 부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함에도 인구가 많다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그리하여 강제적(자연에 의한, 사회적 방식에 의한) 방식으로 인구가 조절된다는 것이다. 조절이 안 되면 빈곤과 기아의 비극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맬더스는 그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하여 방대한 지역에서의 지리적인 조건, 농업생산과 인구정책(주로 인구 억제책으로 부름)의 관계를 조사하였다. ‘문명이 뒤떨어진 지역’과 ‘과거의 지역(역사시대)’이라고 하여 아메리카 원주민, 남양군도, 북유럽, 아프리카, 시베리아, 터어키, 인도스탄(영국식민지 시대의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가 안 된 때의 지명으로 보인다)과 티벳, 중국과 일본, 그리스, 로마시대를 사례로 조사하였다. 그리고 동일한 조건으로 당시의 유럽지역(‘문명 지역’)을 조사하였다. 노르웨이, 스웨덴, 중부 유럽, 스위스, 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등을 연구하였다. 지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국가별 사례 연구는 지리적인 연구와 그대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례 지역 연구는 그의 저서의 거의 절반에 해당할 정도로 방대하다. 그의 주요 저서들이 경제적인 요소이지만 인구론은 지리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나온 위대한 저술이다. 올해 노벨상을 받은 폴 크루그만이 경제적 세계화의 구조를 경제지리학으로 해석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이는 것이다.
유럽은 직접 답사를 한 경우가 많고, 여러 지역들에 대한 방대한 문헌도 인용하고 있다. 결국 지리적인 조건(기후, 토양, 지형, 용수 공급 등)에 의하여 식량 생산량이 인구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점을 지역에서의 조사를 바탕으로 그 증거를 들고 있다. 기후와 평야가 적어 농업에 불리하면 인구가 적고, 혹시 수산업이나 임업으로 보완하면 약간 더 부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 어떤 강압적인 사회적인 수단을 통하여 국가나 부족이나 마을 단위에서 인구를 통제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빈곤한 인구가 늘어나고 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석유와 지하자원과 삼림과 하천 범람원으로의 농경지의 극적인 확대를 예상을 못한 것이다. 그의 식량 생산은 요즘 말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사실 현대에 와서도 보면 식량 생산의 분포와 식량 소비의 분포, 그리고 빈곤과 기아 지역의 분포 등을 보면 여전히 식량이 부족한 지역이 많다. 그러나 정확히 인구별로 지구에서 생산되는 모든 식량들이 공평히 분배된다면, 식량은 모자라지 않은 것이다. 생존에 충분한 정도로 식량을 소비하고 과도한 소비를 줄인다면, 아마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혹은 그리고 미래를 보면 지나친 자원 채굴과 에너지 소비로 현재의 문명 구조에 대한 우려감이 나오듯 농업생산에도 우려할 바가 상당한 지역에서 보고가 되고 있다.
어느 정도의 행복한 생활을 유지하는 경제 인구와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환경 인구가 어느 선에서 합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의 인구 규모로의 증가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맬더스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많지만, 환경파괴와 과도한 에너지와 자원의 사용이 없다면 현대의 문명 구조를 유지하면서 모든 인구를 부양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맬더스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이제 인류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고자 한다. 삼림과 하천을 보호하자고 한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경제인구와 환경인구는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다. 그의 1798년의 인구론 초판의 제목은 “인구의 윈리에 대한 소고(The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인데, 1803년에 나온 2판에서의 인구론 제목은 ”인구의 원리에 대한 소고 혹은 인간의 행복에 대한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의 인구의 영향에 대한 견해와 더불어 미래에 일어날 폐해를 제거하거나 완화에 대한 전망에 대한 고찰“이라고 길게 붙이고 있다. 죄악과 빈곤이 없는 적정 인구와 충분한 식량 공급을 통한 인간의 행복을 주창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죄악과 빈곤의 원인이 식량만이 아닌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지만, 지구온난화와 환경 파괴 등과 같은 크고 작은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은 사실이다.
경제인구와 환경인구와 인간의 행복과 환경보전의 조화를 찾는 것은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세계의 정치가들이 협력한다면) 쉬운 것 같기도 하다. 현재 인류의 진화 방향은 경제 인구로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 침체 혹은 경제 위기는 환경 인구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도 든다. 세계화가 눈으로도 보이는 지금, 적정한 경제인구와 환경인구의 합치점을 찾아야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인류 문명이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지속가능한(생산이 충분하면서도 환경에 영향이 적은, 그리고 에너지와 자원의 걱정이 덜한) 경제활동의 경제인구가 행복한(잘 보존된) 환경 속에서의 환경인구와 합의가 될 때 인류는 행복할 것인데, 그것은 유토피아일까? 현실은 복잡하다.
(2008년 1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