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교수의 기세가 대단하다. 지난 5월 말 첫 선을 보인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가 출간 이래 줄곧 베스트셀러 차트 종합부분 1위 자리를 고수하며 지금까지 무려 50만 부가 팔려나갔다고 한다. 서점가에서 50만 부 판매를 기록한 책이 꽤나 여럿 있지만 읽기가 녹록치 않은 인문서가 이 같은 기록을 세우기란 글쎄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내 기억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마이클 샌델 교수가 최근에는 ‘정의’ 말고도 ‘도덕’이란 화두까지 내걸고서 양수겸장으로 우리 독서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의 책 ≪왜 도덕인가≫한국경제신문도 곧바로 베스트셀러 차트 상위에 랭크되며 독자들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흡입하고 있다. 이건 분명 하나의 사건이다. 그래서 단순히 서점가의 화제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핫뉴스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마이클 샌델 신드롬’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게 불러도 조금도 이상할 것 없다. 우리 국민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정의와 도덕을 학습하게 함은 물론이거니와 대입논술을 준비하는 고3은 물론 학생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었다.어디 그 뿐인가. 책 안 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리의 몹시 바쁜 직장인들 또한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니,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있을까. 도대체 마이클 샌델은 어떤 인물이기에 우리 독서계를 강타하는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스물일곱 나이로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된 마이클 샌델(57세)은 스물아홉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1982년에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이 책에서 ‘공동체주의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여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마이클 월저·찰스 테일러 교수와 함께 공동체주의의 4대 이론가 중 한 명이 된다. 이후 그는 정의 분야에서 세계적 학자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그의 저작들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교양의 수준을 넘어서는 학술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음에도 이런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글에는 독자를 사로잡는 남다른 호소력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유럽에서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어가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를 낸 장하준 교수의 돌풍 또한 주목할 뉴스가 되어 가고 있는데, 그 역시 내공이 깊은 경제학자라는 점에서 마이클 샌델과 닮은꼴이 아닐까 싶다. 그의 책에 우리나라에서 번역출간 20일 만에 인문사회과학도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10만 부가 팔려나갔는데, 오죽하면 이 책을 펴낸 출판사 대표가 “오히려 당혹스러울 지경”이라고 했단다. 그럼 왜 우리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와 ‘도덕’ 강의(?)에 열광하는 걸까? 우선 많은 현대인들이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가치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 8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마이클 샌델 교수가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 민주사회에선 경제 논의가 정치를 지배해 왔죠. 우리 모두 국민총생산(GDP)의 증가와 부를 원했고 분배의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광의의 정치가 경제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이 사람들은 점점 ‘공허함(emptiness)’을 느낀 것 같아요. 왜 ‘정치인과 정당들은 좋은 삶의 조건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가’ 하는 정서죠.”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경제가 정치를 밀어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의 경우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수긍이 가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기막힌 출간 타이밍이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서서히 우리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즈음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인 ‘공정사회’를 들고 나왔던 것이다. 여기에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부동산투기·세금탈루·병역기피 등 4대 필수과목이 인구의 입에 회자되었고, 곧이어 외교부장관 자녀 특채 문제가 불거지면서 우리 사회가 과연 ‘공정사회’인가 하는 논쟁이 뜨겁게 펼쳐졌던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하버드대의 강의 ‘Justice(정의)’를 바탕으로 쓰인 책인데, 이 강의는 7,000명도 채 안 되는 학부생 가운데 무려 천 명의 학생들이 들을 만큼 하버드대에서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수업으로 손꼽힌다. 자유사회의 시민은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지, 자유시장은 공정한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잘못인 때도 있는지, 도덕적으로 살인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지 등 우리가 시민으로 살면서 부딪히는 어려운 질문들을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치인 ‘도덕’을 말하는 ≪왜 도덕인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철학 전통을 통해 “정치·경제·사회·교육·종교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분야가 도덕에 기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그는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사회,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첫 단계”라고 말하면서,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세울 수 있음을 강조한다. 덧붙여 소개하고 싶은 그의 저서인‘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이란 부제가 달린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동녘도 읽어봄이 좋을 듯싶다.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의 욕망은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안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경고하는 이 책은 일상에서 느끼는 도덕적·윤리적 딜레마와 인간 복제, 유전자 선택 등 우리에게 닥쳐올 윤리적 문제들을 쉽게 풀어냈다. 어쨌든 마이클 샌델 교수는 우리에게 도덕과 정의에 대해 생각하고 또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에 대해 깊게 되새겨보라며 강력하게 권유하고 있고, 우리는 그의 권유를 적극적으로 경청하면서 깊은 자기성찰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공정사회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조성일(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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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like 잠언들 (0) | 2014.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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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ohns Shin